중3 시절, 처음부터 선린인터넷 고에 지원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너무나 높은 벽으로만 느껴졌던 이 학교에 자신있었던
것은
내가 아니라 담임 선생님이셨다. 적어도 내 느낌에는.
어느 한 실업고와 선린인터넷고.
그 당시 그 실업고는 선린의 시설을 벤치마킹한 곳이였다.
엘리트 친구들만 갈 수 있다고 소문이
난 선린 인터넷고보다
나는 30분 정도를 자전거로 통학가능한 어느 한 실업고에 이끌렸었다.
어떠한 조건에서도 선린을 지원 할 다른 친구들보다 좋지 못했기에
더욱더 자신감은 없었고 그러했기에 주저했던 것이다.
어느 실업고에 가면 비록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래도 행복해 할 줄 알았던 것이
우물안 개구리의 모습이라고 지금의 나는 과거를
기록해본다.
나의 짧기만한 지혜와 지식으로 내린 결정을
선생님께서는 바르게 인도해 주셨다.
"까짓거 해보고 안되면 그때가서 그 실업고를 가도 늦지 않을테니 한번 도전해보자."
그렇게까지 선린인터넷 고에 나를 합격시키고자 한 것은 그곳 학생들의 수업태도를 보셨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 당시에는 어렸기에
선생님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말이지만 지금에 와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답 은 환경이 사람의 모든 것을 지배할 수는 없지만 많은 부분을 환경이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견학차 학교에서 단체로 버스를 타고 그곳을 갔을 때, 선생님께서는 그 곳 학생들의 수업태도와 그 곳의 여러
곳을 둘러보시며 하나하나 파악을 하셨던 것이다.
그런 선생님께서 내게 용기와 자신감을 한껏 불어 넣어 주셨기에
모든 노력을 기울 일 수 있었던 지난 시간.
그 때와 비슷한 두
가지 선택길이 내게 또다시 주어졌다.
바로 부사관 자원과 대학 진학.
여기서 나는 어느 실업고를 부사관 자원으로,
선린인터넷
고를 대학 진학으로 대체하여 생각하고자 한다.
사실 부사관이 많이 이끌렸다.
창업대회에서 상을 받게 된 아이템을 생각하고 내 머릿속에서 창의성이 빛을 발했을 때는
그 어느
무엇도 나를 구속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공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버지 사고 이후로, '내게 남은 건 공부밖에 없다.'
이 말을 내게
다짐하며 공부만을 외쳤던 시간이었다.
허나, 대학생활의 시작으로 공부 이외의 모든 문제들을 직접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 시기에 와 있는데 지난 시간동안의 내 모습으로 무언가 여유가 없고 구속당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고 웃음을 지을 수 조차도 없었던 것을 보았기에 이공계 대학 진학 예정인 나로서는 그러한 상황이 불보듯 뻔한 상황일 터, 과연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인가를 물어 보게 된다.
상담원.
오직 이 직업만이 나의 삶이라는 시간 속에서 날개를 돋게 도와줄 것이라 확신한다.
자기계발의 결과로 내가 진정 원하는 직업임에는
틀림없다.
허나 이 직업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일깨우게 만든다.
오히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이 직업에 대한 나의 성숙의 힘과 넓은 지혜와 아량으로 더 크게 발전할 수 있으리라. 이러한 생각이 들면서 다른 직업도 찾아 보게 된다.
IT분야.
흔히 사람은 큰 물에서 놀아봐야 한다는데,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더 컴퓨터 분야 지식을 알고 있어서 인정을 받았던 중학교 시절에는 그것이 유일한 나의 꿈이라 생각했다. 웹마스터를 꿈꾸고 선린 인터넷 고에 와서
창업을 배우고 CEO에 관심이 생겼고 졸업을 하는 시기에 와서는 IT분야 CEO로 꿈을 정하게 된다. 사실 IT 분야에 대해 꿈을 접으려 했다.
하지만 수능공부의 대처로 창업을 공부하고 경제/경영 분야 독서를 하면서 어떤 책을 읽든지 간에 IT라는 단어는 빠짐없이 등장했고 IT분야는 나의
적성이 아니라고 단정 지었던 나를 갈등하게 만들었다.
분명 뛰는 놈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을 인정한다. 선린에 와서 느낀 것은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타고난 친구들을 따라 잡을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좌절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본 나를 평가한다면, 여유를 가질 수 없을 때 나는 바보가 된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기에 고민을 하는 것이다. 단순한 노력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을 것임을 잘 알기에….
그래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는 아직은 확신이 서질 않는다. 50대 50이라고 해야 할까. 이 분야에 대해 포기하지 않는 핑계로 전망이 좋다는 것도 한 몫 한 셈이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들어서가 아니다. 그 길을 가야 하는 상황임을 인식하였고 오래 전에는 그 길을 가고자 하는 용기가 없었기에 차마 결정을 내릴 수 없었지만 적성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나는 자신감의 높은 포부를 다시 갖추었기에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그 이면에는 미래 언젠가 후회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길 바라면서 노심초사하는 나를 보게 된다.
하지만 미래 어느날 좋은 기회를 볼 수 있다는 희망으로 현재는 확신이 서진 않았지만 그 결정을 추진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중3때의 선생님 말씀처럼 말이다. "까짓거 해보고 안되면 그때가서 부사관을 가도 늦지 않을테니 한번 도전해보자."
부사관.
안정이라는 단어를 제일 우선으로
생각하게 된다. 돈 걱정 없고 자기계발 하고 청년 실업, 이태백…. 선린에서의 지난 시간은 안정이라는 단어를 쓴 적이 없을만큼 바쁘게
보냈다.
그리고 안정을 취할 때 비로소 낙오된다는 마음으로 주어지는 모든 시간에 대해 충실하게 임했다. 내가 진정 선린에 오지 않고 어느
실업고를 갔다면 지금의 발전된 내 모습을 상상할 수나 있을까. 지금만큼이나 자신감 속의 나를 보고 높은 포부와 꿈과 이상을 생각할 수 있는 내
모습을 볼 수나 있을까. 그 답에 대해서 확신을 가질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싶다.
고등학교 안에서만큼은 나름대로 큰 물에서 놀아 봤다고 생각한다.
허나
새출발의 시기에 와서 큰 물에서 논 고등학생은 다시 큰 물에 뛰어들 충분한 의지와 용기가 있음에도 연못가로 들어가겠다고 결정한다면 그것이 옳은
결정일까 아니면 실수의 판단일까.
지금의 내가 부사관에 끌리는 점은 여유로운 자기계발이라는
것이다.
내 생의 목표는 오직 상담원 뿐이다. 성장은 경쟁을 통해 최대로 이끌 수 있음에 동의하지만
그것이 성숙해진다는 의미로 볼
수는 없다. 그러하기에 20대라는 삶을 군대에서 보내게 된다면
적어도 상담원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내 자신이 부끄러울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정보통신 기술병으로 간다하면 비록 대학교에서의 고도화된 전문 지식까지는 아니더라도
IT 기술을 접할 수는 있을 것이다.
또한 부사관으로서 몇 년 후에 전문대를 나올 수 있을 터,
비록 배우고자 하는 욕구를 완전히 충족시키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나마 배울 수
있음을 감사해 할 것이다.
어떤 선택이든 기회비용이고 아쉬운 선택일 수 있음을 잘 안다.
돈 걱정 하지 않고 자기계발을 하며 미래 어느 날 성숙의 그
날을 맞이한다는 희망으로
부사관을 지원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 답을 내려야 한다.
이런 생각도 들곤 한다. IT분야 기술자가 앞으로 전망이 좋다고 하지만 그것이 나의 길일 수는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말이다.
고등학교때의 자기계발의 결과가 상담원이 나에게 더 잘 맞는다고 결론을 내렸다면 그것은 고등학생으로서 느끼는 짧은 지혜와 지식일까.
그리하여
부사관을 택하는 것이 앞으로의 나의 삶에 있어서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인가.
지금의 부사관 자원의 결정이 오래 전 중3때의 선생님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셨듯 대학진학을 권하는 분들이 이번 결정에 있어 나의
선생님일까? 상담원은 그 후에 해도 늦지 않는 직업일 것이기에, 상담원의 꿈을 잠시 미루기로 결정하고 IT 분야의 지식을 더 쌓을
것인가.
공부는 해야 할 때가 있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 대학 진학을 포기한다면 IT 분야 기술자로서의 공부는 앞으로의 삶 속에서 멀어질
뿐이라는 것을 잘 안다.
확실한 것은 어떤 선택을 하든 앞으로의 삶 속에서 역경에 있어서
헤쳐나갈 수 있는 절대적인 것으로 용기와 자신감의 정도의 차이일 것이라 생각한다.
고심 속에서 결정의 날은 다가와 시간은 흘러만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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