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의 삶은 비판적인 시각을 위해 존재한다
2006년의 스무살을 뒤로하고
얼마 후면 스물한살의 나를 보게 된다.
감성적인 내 모습을 반성하며 대학의 신입생으로서
이제는 이성적인 면을 갖추자고 스스로에게 도전하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게 된다.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 와서는,
그 이성적인 면이라는 게 비판적인 시각을 갖추자는 것으로
조금 더 확실해졌고 학부과정인 1학년의 과목 수강신청 역시
교양과 감성 그리고 이성의 적절한 조화를 위해 노력했다.
1학년을 마쳐가는 지금에 와서 이렇게 지난 시간을 회상해보는데
세 가지 모두를 적절히 활용하려고 노력하다보니
무엇 하나에 집중적으로 빠져 있지는 못한 점이 아쉬운 점으로 남아 있겠으나
이렇게 라도 했으니, 그나마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인정해야겠지.
모든 분야에 가능성만을 남겨 두었으나 그런 가능성만이라도 남겨 둘 수 있었으니
앞으로의 삶에서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한 너의 다짐에
밑바탕을 잘 다져 놓았다는 것으로 생각의 실타래를 마치고 싶다.
그에 1학년에 대한 나의 평가는 학업면에서는 상·중·하에서 '상'을,
대인관계면에서는 '중하'을 꼽으려 한다.
혼자 있을 수 있었던 고교시절에서는 완벽해 보였던 나의 대인관계스킬은
대학에 와서야 비로소 그 실체가 명백하게 드러났고
활발하지 못한 내성적인 성격,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면면들은
사람과 사람간의 대화와 그 안에 유머부재 등 대인관계에는 매끄럽지 못하는데
대학 1년의 목표가 처음부터 그것을 위해서가 아니었으니 당연하다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학년에 가서 대인관계에 대해 더 적극적인 면을 보이겠다고
다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공계 학과이기에 그렇다.
수능을 마치고 상담학과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나였으나
여러가지 필연적인 이유로 이공계열 학과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고교시절부터 자기계발을 하여 내면을 잘 다졌던 시절이 있었기에
표면적으로 보는 나를 잘 알고 있었다.
그에 대한 답은 바로 이공계는 나와 맞질 않는 다는 결론이었는데
그런 한계를 벗어나고도 싶었던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것을 나는 꿈에 대한 '시도' 와 '도전' 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쨌든.
1학년에서는 교양과목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상위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2학년에서는 정보제어의 전공 수업 위주로 수학과 물리 등 계산능력에 대한
현저한 이해 부족을 보이고 있어 좋은 성적은 고사하더라도 적응이나 할 수 있을런지에
대해 끊임없는 문답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그런 문답은 필요가 없으나, 뻔히 보이는 그런 미래에 대해서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맞이 하게 되면, 역시나 뻔히 보이는 것에 뻔히 보이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는 것.
제대로된 시도도 못한 채 허무하게 끝날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2007년의 2학년 생활은 그래서 우선이 수업적응이요, 두 번째는 대인관계 스킬이 될 것이다.
그 안에서 1학년때 시도의 가능성만 있었던 비판적인 사고가 플러스가 되어
2학년의 삶에 더할나위 없는 최선의 행동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20대의 삶은 비판적인 사고를 갖추어야 하는 시기 인 것 같다.
20년을 보내는 동안 스스로가 이런 사고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했다고 보는
개인적 삶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동시에 초·중·고교에서 그런 시각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과거를 후회해도 소용없으리.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 20대를 시작한 지금에서
그런 시각을 갖추어야 할 자기계발의 성숙한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사회 초년생인 나에게 있어 사회는 너무나 복잡미묘한 부분이다.
평소에 습관적으로 지나쳐버린 것들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해보고 더 나아갈 방향은 없는지 확인하는 절차는
삶의 부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특히, 예측할 수 없는 이 시대를,
등떠밀려들 듯 살지 않기 위해서라도.